자작소설- 피드백을 받고 싶어 올려요.
취미로 글을 쓰고 있어요.
예전에 이곳에 짧게 올린적이 있었는데 이곳 도서게시판의 색깔? 과는 맞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었어요.
그래도 따로 활동하는 곳이 없어 피드백을 받을 곳이 이토렌트뿐이라 양해를 구하고 올려봅니다.
시간 나시는분들만 봐주시고 피드백도 주시면 감사드립니다!
Lost Time
2017년 4월 6일 목요일.
오전 7시 25분. 알람시간까진 아직 5분이 남았지만 나는 어제와 같이 그리고 그제와 같이, 한결 같은 시간에 버릇처럼 눈을 떴다. 소형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갈색 플라스틱 그릇에 반쯤 따르고 그 위에 시리얼을 붓는 건 조금이라도 시리얼을 바삭하게 먹으려는 나의 오랜 습관. 우유 위로 낙하하는 시리얼이 수북해 질 때쯤 숟가락을 꺼내들고 소파로 가서 앉았다. 아침 입맛은 없지만 내 건강에 대한 의무감 때문에 나는 TV를 보며 기계적으로 시리얼을 입에 넣었다.
거울을 일부러 보는 편은 아니지만 출근준비를 하면서 스치듯 비친 내 모습은 뭐랄까, 많이 늙고 기운도 없어 보인다. 더 없이 초라해 보였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거울속의 나에게 그 정도면 꽤 멋지다고 당차고 자신감 있는 눈으로 말을 건네곤 했는데 서른 중반에 이른 지금은 삶에 찌들어 자신감과 자존감은 눈 씻고 찾아보려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이를 먹으면 그 나이에 맞는 행동과 능력이 필요하다. 나의 20대는 그 나이 대에 충실했다. 취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공부를 했고 젊음을 만끽 하며 밤새 놀기도 해보고 여러 이성들과 연인관계를 맺기도 하였다. 나의 20대는 찬란히 빛났고 나는 내가 그 속에서 평생 머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다. 모두들 나아가고 있었다. 모두들 나아가고 있는데 나 혼자 멈춰있으니 주변과 서서히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쩜 당연한 것이었다.
마지막 연애를 했던 것이 5년 전, 그렇게 미래에 대한 아무런 준비 없이 계속 살 거라면 연애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혼은 하지 못 할 것이고 그나마 한두 살 더 먹으면 연애조차 쉽지 않을 거라 말하고 떠났던 그녀의 예언은 지독히도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10평 남짓한 월세 방을 빠져나와 회사로 향하는 출근길 내내 달갑지 않은 잡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지겹다. 모든 게 다. 오늘이 목요일밖에 되지 않은 것은 더더욱.
“좋은 아침.”
단 한 번도 아침이 좋았던 적이 없었지만 항상 그렇듯 맘에도 없는 인사말을 건네며 내 자리에 앉았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합정역에 위치한 가정용 태양광 발전기를 수입 해 판매하는 영업회사인데 주로 단독주택이 많은 파주 일산 쪽에 판매영업을 하고 있다. 나는 회사로부터 제공받은 태양광 발전기를 팔아 300만원은 회사에 건네고 나머지는 내 수익금으로 가져간다. 공식제품가격은 397만원이니 원칙적으로 하면 대당 97만원이 내 수중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물론 보통 350만원에 팔기도 쉽지 않지만.
머리카락이 있는 곳보다 비어있는 곳이 더 많은 영업1팀장인 송 차장은 간단한 아침조회시간에 오늘도 파이팅 하자는 말과 함께 쓸데없는 말 몇 마디를 더 늘어놓았다.
“강 과장은 지난달에 1대밖에 못했더라. 후배들 보기에 민망하지도 않아? 분발 좀 더 해야겠어.”
적당히 흘려듣고 나가려는 찰나에 뒤통수 넘어 들려온 쉬어빠진 목소리. 사무실에 강 씨는 나밖에 없기에, 또한 지난달에 1대의 실적을 올린 사람 역시 나뿐이기에 그리 집중하지 않아도 나한테 하는 얘기임은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는 대꾸도 하지 않고 태연한 듯 그대로 사무실 밖으로 빠져나왔지만 마음속은 그다지 태연하지 못했다. 한 때는 나도 제법 잘나갔던 적이 있었는데 어쩌다 처지가 이렇게 되었는지, 돌이켜봐도 딱히 이유는 모르겠다.
한 대를 팔아선 월세는커녕 영업하러 돌아다니는 기름 값도 대기 버거웠다. 계속 이대로라면 차라리 일을 하지 말고 집에 가만히 있는 게 통장의 잔고를 좀 더 오래 보전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항상 그렇지만 오늘 따라 좀 더 일하기가 싫었다. 때 마침 점심이 조금 지나자 하늘에선 봄비가 마치 여름 소나기처럼 강하게도 쏟아져 내렸다. 집집마다 우편함에 봉투로 잘 포장된 전단지를 넣어 돌리는 방식의 영업이라 이렇게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더 이상 제대로 일을 하기 힘들었다. 오후에 고객과의 미팅이 잡힌 것도 아니기에 회사에 대충 둘러대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사실 집에 일찍 온다고 딱히 할 게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멍하니 남은 하루를 마저 보낼 뿐.
그저 멍하니.
2017년 4월 8일 토요일.
따라라라랑- 따라라라랑-
쇠 따위를 신나게 두들겨 대는 소리가 곤히 자고 있는 내 귓가에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마구잡이식은 아니었고 일정한 박자감이 있는 소리였다. 분명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있는 낯익은 소리, 그 소리의 정체를 깨달았을 때 눈이 번쩍 떠졌다.
7시 반. 자명종시계 소리를 듣고 눈을 뜨는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만이었다. 어제 특별히 늦게 자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평소처럼 미리 일어나지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크게 대수롭게 여기진 않았다. 난 변함없이 기계적으로 시리얼을 입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곧 출근길에 올라섰을 땐 평소와는 다름을 또 한 번 느껴야했다. 분명 이 시간이라면 출근길 교통체증으로 꽉 막혀야할 도로가 이상하게도 한산했다. 시내 길도 그렇고 강변북로위도 평소 차량 통행의 반의반도 되지 않을 정도로 뻥 뚫려 있었다. 이렇게 한산한 출근길은 과거 택시들의 단체 파업 이후 처음이었다. 하지만 도로위의 택시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눈에 보였기 때문에 파업 때문이 아님은 확실했다. 어쨌든 막힘없는 도로는 쾌적했고 나는 의도치 않게 평소보다 30분이나 더 일찍 출근을 하게 되었다.
나는 (주)쏠라테크이엔씨 라는 직사각형 모양의 기다란 명패가 붙어있는 회사 출입구 앞에 서서 오늘은 정말 이상한 날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언제나 활짝 열려있던 모습의 출입구가 음산한 느낌이 들 정도로 꽉 닫혀있는 것이었다. 굳게 잠겨있는 문을 몇 번 흔들어보다 시계를 봤더니 8시 30분이 막 지나고 있었다. 5년 째 다니고 있는 이 회사를 1등으로 와 본적은 단연코 오늘이 처음이었기에 번호키 형식의 도어락이었지만 눌러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문 앞에서 서성일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더 서성여봤지만 그 누구도 오는 사람이 없었다. 시계는 이미 8시5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도무지 말이 안됐다. 이 시간까지 단 한명도 오지 않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나는 머릿속으로 이런 저런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9시가 넘었을 때 나는 확신했다. 나만 남겨둔 채로 사무실을 이전 한 것이라고. 어제 사무실 복귀 없이 현장에서 바로 퇴근했기 때문에 이런 사단이 생긴 게 분명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아무도 내게 사무실 이전관련해서 말해준 사람이 없었지? 사실 이런 건 어제가 아니라 최소 한 달 이전엔 공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무관심해서 나만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이렇게 어이없이 해고당한 것일까? 갖은 망상들이 뇌를 뚫고 사방팔방 뛰쳐나왔지만 무엇이 정답인지 알려줄 사람은 따로 있었다.
“자네가 어쩐 일이야, 이 시간에?”
전화기 너머로 조금은 놀란 기색의 송 차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게서 전화가 온 게 몹시도 의외라는 투였다. 아무리 나라도 회사가 없어졌는데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 않고 그만 둘 거라고 생각한 건지 그의 놀란 목소리가 내겐 오히려 더 놀라웠다.
“저, 잘린 겁니까?”
“갑자기 뭔 소리야. 자네 요즘 슬럼프 같아.”
“아직 잘린 게 아니라면 왜 회사가 이사를 한 걸 저만 모르는 겁니까. 앞으로 출근 할 장소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대체 어느 회사의 직원이 자기 회사가 어디있는지도 모르냐는 겁니다. 예?”
“강 과장 진짜 자네 대체 뭔 소리야? 밤새 술이라도 펐어? 아직도 술이 덜 깬 거야 뭐야. 뭔 회사가 이사를 해 이사를.”
“저 지금 회사 앞입니다. 평소보다 30분이나 일찍 출근했는데 아직도 문이 안 열려요. 나만 빼고 다들 어디서 일을 하기에 아직도 회사 문이 닫혀있냐는 겁니다!”
“이 사람아. 토요일 날 출근해서 왜 문이 닫혀있냐고 나한테 소리 지르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우리 회사에 주말출근 하는 사람이 대체 어디 있다고. 자네 진짜 도대체 왜 그래?”
나는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냐고 소리를 치려는 찰나에 불현 듯 떠오르는 게 있어 얼른 시계를 확인했다. 아깐 시간만 확인해서 미처 못보고 넘어갔던 (土)라는 글자가 눈에 크게 들어왔다. 황급히 전화를 끊고 핸드폰 시계를 다시 확인하니 역시나 4월 8일 토요일이었다. 어젯밤에 잠들기 전 봤던 요리프로그램에서 순댓국 맛집을 소개하는 걸 보고 오늘 점심은 순댓국으로 해야겠다고 분명 생각했었는데, 그 프로그램은 목요일만 하는 게 분명 맞는데 오늘이 토요일이라는 건 도저히 말이 되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해당프로그램을 검색해보니 분명 목요일에 순댓국 맛집으로 방송을 했던 게 맞았다. 그럼 분명히 오늘이 금요일 인 것도 맞아야 하는데 어째서 오늘이 토요일인거지.
나는 주차장에 세워놓은 06년 식 레조에 앉아 다시 한 번 어제의 일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변함없이 7시 25분에 일어나 시리얼을 억지로 먹고 출근해서 송 차장에게 한소리 듣고 고양시로 영업을 떠났었다. 점심에 오모가리 김치찌개를 먹은 후 봄비치고 거세게 내린 비를 보고 그대로 집으로 퇴근했었다. 그 후 멍하니 TV를 보다가 저녁으로 라면을 하나 끓여 반주로 소주 한 병을 마신 후 10시쯤 하는 TV프로그램을 다보고 나니 11시쯤 되어 바로 잠을 청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이후의 일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 다음에 이어진 기억은 바로 오늘 아침의 자명종 소리였다. 중부지방 비 소식을 검색해보니 어제는 화창한 봄 날씨였고 그제인 목요일에만 한차례 비가 내렸었다. 그게 바로 목요일이 맞았다. 그러면 오늘은 금요일이 돼야 함이 분명한데도 토요일이라는 현실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이젠 미처 버리기라도 한 건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오전 10시가 조금 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컴퓨터를 켜고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조회해 보았다. 고양시에 있는 무봉리 순댓국집에서 7,000원이 결제돼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오늘이라고 생각했던 바로 어제의 날짜로!
2017년 5월 13일 토요일.
한 달 전쯤 겪었던 황당한 일이 아직도 가끔씩 문득 생각난다. 내 상식으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고 내 상식 이상의 무언가를 조언해 줄 지인도 없었기에 더 이상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놀라운 것은 기억이 사라진 바로 그 날에만 4대의 태양광 발전기를 팔았다는 것인데 덕분에 그 외의 날에 판 2대를 포함하여 그달에만 총6대의 태양광 발전기를 팔아 약 300만원의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송 차장은 이제야 슬럼프를 극복했냐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하루에 네 대를 판다는 건 있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기억이 나질 않기에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모처럼 넉넉한 생활비덕에 그간 벼르고 벼르던 차량수리도 드디어 할 수 있게 되었다. 연식이 연식인지라 잔고장이 많긴 했지만 선뜻 수리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100만원을 들여 싹 수리를 하기위해 바로 어제 집 근처 공업사에 차를 맡겼다.
처음 입사하고 한 달 정도 지하철 출퇴근 하고 난 뒤 바로 차를 구매해 영업일을 시작했었으니까 근 3년만의 지하철 출근이었다. 오랜만에 탄 지하철은 나름 쾌적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로 분명 숨 막히는 출근시간을 예상했는데 앉을 자리만 없을 뿐 널찍한 공간 덕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오늘은 미리 말해둔 신입교육을 핑계 삼아 신입의 차를 얻어 타고 영업을 할 요량이었다. 아침의 기운이 나쁘지 않은 게 왠지 한 건 올릴 거 같은 좋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좋았던 기분은 회사 출입구 앞에 도착해서야 당첨되지 않은 마권처럼 산산이 흩뿌려졌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황급히 시계와 핸드폰을 동시에 확인하니 역시나 토요일이다.
또 하루가 온전히 사라졌다.
덜컥 겁이 났다. 처음도 아니고 벌써 두 번째라는 것은 세 번째도, 네 번째도 있을 수 있음을 의미했다. 뇌에 문제라도 생긴 걸까. 언젠가 봤던 영화가 불현 듯 떠올랐다. 조금씩 기억을 잃어가는 주인공...하지만 난 어제의 일부가 생각나지 않는 게 아니라 아예 어제를 살았던 기억이 전혀 없다.
떨리는 손으로 정장 안쪽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애초에 오래 살고 싶다는 욕심은 없었다. 때때로 자기 전에 감은 두 눈이 다시 떠지지 않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고 싶진 않았다.
“거기 지금 뭐하는 겨? 금연건물인거 몰러? 복도가 완전히 뿌여네. 얼른 끄지 못혀?”
날선 목소리에 놀라 얼른 담배를 비벼 껐다. 발밑에는 방금 끈 담배 외에 5개의 꽁초가 더 버려져있었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 6개비의 줄담배를 피웠던 것이다. 나는 얼른 발밑의 담배꽁초들을 주어 손에 쥐었다. 숙인 허리를 세우니 머리가 띵하니 아려왔다. 나는 건물관리인에게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도망치듯 건물을 빠져나왔다.
“빌어먹을.”
절로 욕지거리가 치밀었다. 나이 서른다섯에 모아놓은 돈도, 결혼은커녕 만날 여자도 없는데 이젠 병까지 걸리다니 애초에 희망 없이 하루하루를 그저 살고 있던 내게 이 절망감은 너무도 가혹했다. 10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미래가 지금의 나에게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너무도 강렬하게 다가왔다.
10년 전 -1
대학 졸업을 앞두고 모두들 분주해졌다. 학교가 더 이상 우리의 신분을 보장해주는 울타리가 되 줄 수 없다는 현실에 모두들 불안해했다. 나는 그런 불안감에 편승해 몇몇 회사에 이력서를 제출하였고, 두 개의 회사에서 서류전형에 통과하였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오전엔 가산디지털단지에서, 오후엔 강남에 위치한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에서 같은 날 면접 일정이 잡혔다.
아침에 일어나니 거리가 온통 새하얗게 뒤덮여 있었다. 간밤에 눈 소식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수북이 쌓일 정도로 많이 내린다곤 하지 않았는데 하늘도 나를 축복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조건 잘 될 거만 같은 기운이 온 몸에 충만해졌다. 나는 더 고민하지 않고 오전 면접을 과감히 포기하고 더 마음에 들었던 오후 면접만 보기로 결정했다.
“이 회사를 지원한 동기는 무엇입니까.”
“폼 나게 강남으로 회사 다니고 싶었는데 마침 귀사에서 소프트웨어사업부 신입 채용을 하기에 지원하였습니다. 뽑아주신다면 저로 인해 회사의 품격이 올라가도록 만들겠습니다!”
매사에 자신감이 넘쳤던 나는 호기롭게 소리쳤고 그 외의 몇몇 질문에도 당차게 대답했다. 나를 면접에서 뽑지 않는다면 내가 아쉬운 게 아니라 나를 알아보지 못한 회사가 아쉬울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른 판단을 한 회사 측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JH테크넷 소프트웨어사업부 영업2팀으로 이번에 발령받은 신입사원 강남규입니다. 비록 저희 집은 강북에 있지만 직장만큼은 이름에 걸맞게 꼭 강남으로 다니고 싶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에너지 넘치는 친구가 왔네. 영업2팀장 유필상 과장입니다. 한 번 잘 해봅시다.”
풍채가 아주 좋은 유 팀장이 솥뚜껑만한 손으로 내손을 꽉 쥐고 흔들었다. 그 뒤로 짧은 스포츠머리의 안중수대리와 어딘가 모르게 인텔리해보이는 김정민대리와 차례로 인사를 나눴고 마지막으로 팀의 유일한 여성인 유성희사원과 서로를 소개하였다. 유성희씨는 1년 먼저 입사한 선배로 나이로 따지면 나보다 1살이 어렸다. 아담한 체구에 아직 젖살이 채 덜 빠진 동글동글한 얼굴이 몹시도 귀여웠다. 특히나 은근히 풍기는 샴푸향이 그 풋풋함을 더했다.
“앞으로 성희씨가 신입씨좀 잘 챙겨줘. 후배 왔다고 너무 괴롭히지 말고.”
“제가 뭐 안 대리님인줄 아세요. 안 대리님한테 받은 것처럼 하면 강남규씨 바로 도망갈걸요. 저니까 버틴 거지.”
“안 대리는 괜히 한마디 했다가 본전도 못 찾네. 허허허.”
“팀장님은 좀 그렇게 웃지 좀 마시라니까요. 할아버지 같다고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보기와는 다르게 당찬 면이 있는 아가씨였다. 전체적인 회사 분위기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우리 팀 분위기는 몹시도 화목해 보였다. 필요한 말 외에는 잘 하지 않는 시크한 김정민대리와는 아직 좀 더 친해질 시간이 필요했지만 팀장님이나 안 대리, 성희씨와는 출근 첫 날부터 화기애애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강남구씨, 강남에서 일하니까 그렇게 좋아요?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네. 근데 이를 어쩌나. 여긴 강남구가 아니라 서초구인데.”
“그야 성희 선배랑 같이 비품 정리하니까 좋아서 그런 거죠. 그나저나 남구가 아니라 남규라고 몇 번을 얘기해야 해요. 남규라고요 강.남.규.”
“남구씨는 진짜 영업이 천직인가보다. 말도 잘하고 비위도 잘 맞추고. 주변에 여자들도 많겠어요? 애인도 있죠! 그죠?”
“남구아니라니까. 성희 선배는 남의 이름을 좀 성의있게 불러주실 수 없어요? 자꾸 성희 선배가 성의 없게 제 이름을 부르면 저는 성의 없는 성희 선배에게 실망할 거예요.”
우리는 곧 잘 장난을 치며 금세 친해졌다. 입사한 지 3개월쯤 지났을 땐 집 가는 방향이 비슷하다는 핑계로 단 둘이 사석에서 종종 만날 때도 있게 되었다.
“선배, 요 앞에 수제 맥줏집 새로 생긴 거 알아요? 어제 퇴근 하는 길에 역 앞에서 전단지 나눠주더라고요”
퇴근 후 그녀와 나란히 걸으면서 말을 건넸다. 어제 전단지를 건네받자마자 그녀 생각이 제일 먼저 났다는 걸 알긴 할까? 언젠가부터 그녀에게서 연한 샴푸냄새대신 싱그러운 시트러스향이 물씬 풍겼다.
“나는 어제 직퇴 하느라 못 받았는데. 어때보였어요?”
“전단지만 보고는 모르죠. 다음 회식 때 거기 가보는 거 어때요?”
“안 가본데 가서 맛없으면 술자리 내내 안 대리님한테 시달릴걸요. 검증도 안 된 곳을 데려왔네, 어쨌네, 하면서요. 그럴게 아니라 오늘 우리가 가볼까요? 검증하러?”
나는 오늘 군 입대를 앞둔 동네 친구와의 저녁 약속이 있었지만 그녀의 제안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몇 번의 선약이 그녀의 말 앞에서 쉽게 엎어지곤 했다. 나는 선약의 당사자들에게 선배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는 신입사원의 비애라며 이해를 구했지만 과연 그게 다였는지 정작 내 자신조차 지금의 이 마음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찾았어요! 저기요 저기!”
그녀의 호들갑이 닿은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Beer&U라고 쓰여 있는 알루미늄채널의 붉은색 LED간판이 보였다. 아직은 다소 이른 시간이었지만 오픈 초기라 그런지 빈자리는 얼마 없었다. 우린 시끌벅적한 술집에서 굳이 조용한 자리를 핑계 삼아 가장 구석진 곳으로 향했다.
“여기 분위기 진짜 신선하다.”
보통 수제맥줏집하면 브라운톤의 인테리어가 대부분이었는데 이곳은 독특하게도 화이트와 블랙이 오묘하게 믹싱 되어 고풍스러움 대신 세련미를 가졌다. 오픈형 천장에 철제 장식과 조형물역시 상당히 독특했다. 생각과는 다른 생소한 분위기였지만 나는 지금 이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다크에일, 남구씨는요?”
“음 전 바나나 바이젠이요. 안주는 뭐로 할까요?”
“맥주엔 소시지죠!”
“그럼 고르곤졸라랑 소시지세트?”
“콜!”
우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판을 집어 들고 별 고민 없이 주문을 마쳤다. 웨이트리스가 주문을 받고 돌아서자 잠깐 정적이 흘렀다. 그녀는 가게 이곳저곳으로 시선을 돌렸고 나는 무심결에 핸드폰을 확인했다. 오늘 모이기로 한 친구들과 만든 그룹채팅엔 20여개가 넘는 미확인 메시지가 쌓여있었다.
‘오늘도 파토내면 날 가만히 안둘텐데’
머릿속 걱정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느 새 나의 손가락은 핸드폰 전원 버튼을 꾹 누르고 있었다. 때마침 그녀는 그런 나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구씨 지금 뭐해요?”
“선배님과의 오붓한 술자리를 혹시나 방해하는 악의무리들이 있을까봐 핸드폰을 끄는 중입니다!”
나는 과장된 목소리로 군기든 척 대답을 하였다. 그녀는 까르르 한 번 웃더니 새초롬하게 목소리를 바꾸며 내게 물었다.
“근데 둘이 있을 땐 선배라고 안 부르면 안 돼요? 남구씨가 자꾸 선배라고 부르니까 나 되게 늙어 보이잖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쵸. 남구씨도 사석에서까지 선배라고 부르니 어색하죠.”
“아뇨, 저도 선배님 늙어 보인다고요.”
“뭐라고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쏘아보는 그녀의 표정이 너무도 귀여웠다. 나는 그녀의 저런 표정을 보기위해 때때로 장난을 걸곤 한다. 짐짓 화난 듯한 그녀는 내가 사과할 때마다 내보이는 특유의 표정 또한 몹시도 아름다웠다.
몇 번의 장난이 더 오갈 때쯤 주문 한 음식이 도착하였다. 12인치 정도 돼 보이는 고르곤졸라 피자와 여러 종류의 수제소시지가 검붉은 조명아래 더욱 더 맛있게 보였다.
“짠!”
우리는 서로의 잔을 부딪친 후 각자의 잔을 음미하였다. 바나나향이 나는 부드러운 밀맥주가 달콤하게 목 안쪽으로 넘어갔다. 그녀는 아예 눈을 감고 몇 번의 목넘김을 하더니 연신 탄성을 질렀다.
“정말 맛있다. 최고에요! 이렇게 진한 맛일 줄이야. 저 완전 반했어요! 남구씨도 제꺼 한 번 맛볼래요?”
그녀가 건넨 다크에일을 한 모금 넘기자 쌉싸름하면서도 묵직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많은 종류의 맥주를 아는 것은 아니지만 수제맥주가 가진 장점은 이 한 모금만으로도 충분했다.
“저도 남구씨거 마셔볼래요. 와 이거도 진짜 맛있다. 이렇게 부드러운 맥주 처음이에요!”
우리는 수제맥주의 매력에 흠뻑 취해 서로가 취해가는 것도 모른 채 연거푸 잔을 들이켰다.
“근데 선배는 저한테 뭐라고 부를 건데요? 그래도 1년이나 먼저 태어났으니 오빠?”
“에이, 아무리 그래도 내가 선배인데 오빠라고는 못하지. 봐줬다 남구야. 사석에선 친구하자!”
“진짜 이젠 내가 남규인지 남구인지 나조차도 헛갈리네요. 여기 필스너 한 잔 더요!”
우린 테이블 쪽으로 의자를 당겨 한발자국 가까이 앉았고, 우리의 마음도 한발자국 더 가까워졌다. 빈 잔이 늘어갈수록 우리의 정도 더 늘어갔고 밤이 깊어갈수록 우리의 마음도 깊어져만 갔다.
“근데 우린 무슨 사이일까?”
시끌벅적했던 사람들이 어느덧 우리 둘만 남기고 거의 다 떠나버렸을 때쯤 그녀가 반쯤 풀린 눈으로 내게 물었다. 천장위의 불그스름한 조명보다 그녀의 양 볼이 좀 더 발그레해졌다.
“같은 회사 선후배 사이지.”
나는 장난기 어린 눈으로 그녀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그게 다야?”
“좋은 친구사이기도 하지.”
“그래 그렇구나. 앗, 우리 너무 오래있었다! 그만 일어서자.”
애써 태연한 듯 부산을 떨며 말하는 그녀의 두 눈은 크리스마스 선물상자를 열었다가 실망한 아이의 눈 같아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이 몹시도 사랑스러워 나도 모르게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당황한 그녀의 입이 무언가를 말하려고 할 때 나는 아무 말 할 필요 없노라며 그녀의 입술을 훔쳤다.
2017년 5월 15일 월요일.
주말 내내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리 위를 마구잡이로 지나갔다. 딱히 사는 게 재미있지도 않고 큰 미련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여기까지만 할까. 한편으론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지금까지 아등바등 버틴 게 아까워서 하루라도 더 살고 싶었다. 오만가지의 생각이 어지럽게 엉겨 붙어 더욱 더 거대해지고 복잡해졌다.
‘역시 병원을 가봐야겠지.’
몸에 문제가 있으니 당연히 가야 하는 게 맞았지만 나는 결국 병원을 찾는 것을 포기하였다. 의사의 입을 통해 직접적으로 알츠하이머 따위의 병명을 듣게 된다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최후의 최후까지 부정하고 싶었다.
따라라라랑- 따라라라랑-
자명종시계가 요란하게 울렸다. 번쩍 뜨인 두 눈으로 제일 먼저 날짜를 확인했다. 요 며칠 사이 생긴 묘한 버릇이었다.
나는 오늘이 월요일임에 안도했고 곧 당연한 것에 안도하는 내 자신이 불쌍해졌다.
평소보다 더 출근길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나의 오늘이, 내일이 되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백지가 되어 사라질까봐 두려웠다.
사무실에 도착한 나는 형식적인 인사도 생략하고 자리에 앉았다. 책상 한 귀퉁이엔 기억에 없는 서류봉투 하나가 반듯하게 올려져있었다.
‘계약서?’
봉투 안엔 총 5장의 계약서가 들어있었다. 날짜는 전부 5월 12일 금요일. 내가 잃어버린 바로 그 날이었다.
모든 영업이라는 것이 다 쉽지 않겠지만 태양광 발전기는 가격이 적지 않기에 한 두 번의 영업으로는 절대 판매를 올릴 수 없다. 먼저 관심을 보이는 고객을 만나서 태양광 발전기의 효용성을 알리고 구매 욕구를 자극한 다음 경쟁업체의 다른 모델보다 우리 회사의 태양광기기가 왜 더 좋은지에 대해 여러 번 납득시킨 후에야 겨우 한 대의 계약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보통 이 과정이 짧게는 보름에서 길게는 반년 가까이 걸리기도 하는데 당일 계약을 하기로 해서 만났다가도 현장에서도 종종 엎어지기조차 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기도 하니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내 기억엔 5월 12일에 고객 미팅이 잡힌 건수가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당일에 무작정 아무 집이고 찾아가 홍보하고 설득하고 계약까지 한 번에 해냈다는 것인데 그런 건수는 1년에 한 두건 있기도 힘든 경우였다. 그런데 하루에 5건이라니. 하루의 기억이 사라진 것 이상으로 몹시도 신비한 일이었다. 가장 처음 기억을 잃어버렸을 때 한 4건의 계약은 애초에 이해해보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고 넘어갔었지만 이번엔 억지로 이해를 하고 넘어가려고 해도 역시나 조금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혹시나 서류자체가 조작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불현 듯 들었다. 나는 급히 계약서상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다. 그리고 수 분 후 모든 계약이 실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 하루와 그 하루 동안 벌어진 믿을 수 없는 양의 계약 성사. 불안한 가운데 묘한 성취감이 끓어올랐다.
“강 과장!”
수시로 상념에 빠져드는 나를 깨운 건 송 차장의 쉬어빠진 목소리였다. 평소보다 좀 더 센 쉰 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선 여러 번 나를 불렀던 모양이다.
송 차장의 머리는 빈 공간을 메우려는 처절한 노력이 가득 담겨져 있다. 얼마 없는 머리칼을 최대한 얇고 넓게 펴 발라서 머리칼이 없는 부분을 메워 놨다. 그러다보니 두상의 굴곡진 형태가 고스라니 드러나 보였다. 아침마다 거울 앞에 서서 머리정리 하는 모습을 상상하자니 새삼 그의 노력이 대단하게 보였다.
“잠깐 옥상에서 얘기 좀 하자고.”
흡연자들의 유일한 안식처인 건물 옥상에 송 차장과 둘이 올라가는 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입사 초기엔 종종 따라 올라가서 담배도 태우곤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담배에 대한 욕구보다 불편한 마음이 더 커져서 뜸해지게 되었다. 아침부터 무슨 얘기를 하려고 옥상까지 가자는지는 짐작이 되지 않았지만 가려놓은 앞머리에 비해 좀 더 많이 휑한 송 차장의 뒤통수를 열심히 따라 올랐다.
송 차장은 옥상 가장 구석진 자리까지 가서야 자신의 안주머니에서 디스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지독히도 알뜰한 그의 유일한 사치품목인 담배, 그나마도 현실과 타협해 가장 싼 담배를 피우는 것일까. 나는 말보로 레드의 씁쓸한 첫 맛을 폐 깊숙이 들이켰다.
“강과장 요즘 물이 오른 거 같아.”
“아 예, 뭐 그냥.”
“지난달에도 6건이나 하더니 지난주 금요일에만 5건이나 올렸다며.”
“어쩌다 날짜가 몰렸습니다.”
나는 대충 둘러대면서도 과연 진짜 내가 한 게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아 뭐 그거야 그렇겠지. 그간 영업한 게 공교롭게 그날 몰릴 수도 있으니.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왜 서구까지 가서 영업을 한 거야?”
“예?”
“예는 무슨. 우리 팀은 덕양구와 일산 동구까지가 영업 바운드리인거 자네도 잘 알잖아. 이번에 올린 5건중에서 3건이 일산 서구더만. 영업2팀에서 얼마나 지랄지랄을 해대는지.”
몰랐던 사실이다. 계약서상의 주소까지 눈여겨보지 않았기에 이번 계약서중 다수가 서구에서 올린 계약이라는 걸 전혀 몰랐다. 사내 정책상 영업1팀은 덕양구부터 일산 동구까지, 영업2팀이 일산 서구부터 파주시까지 영업바운드리로 정해놓았기 때문에 각자의 팀이 개척해놓은 영업구역에 타 팀이 가서 영업하는 것은 당연히 금기시 되어있었다.
나는 그저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할 얘기가 없었다. 마치 술 먹고 필름이 끊겨 기억나지 않는 전 날의 일을 사과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아니 뭐 한 두건이면 대충 무마할 수도 있겠는데 3건이나 되잖아. 개중에 한 집은 영업2팀의 박 과장이 3개월 동안 공들였던 집이더라고. 아침에 자네 출근하기 전에 나한테 와서 얼마나 따져댄 줄 알아?”
아침에 기분이 몹시도 다운돼 있어서 주변 분위기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사무실입구를 지나쳐 내 자리로 오기까지 영업2팀의 시선이 몹시도 달갑지 않았었던 거 같기도 하였다.
“회사 입장에서야 어느 팀에서 팔던 많이만 팔면 좋은 것이지만 사회생활이 그게 다가 아닌 건 자네도 잘 알잖아. 막말로 영업2팀에서 덕양구와 일산 동구에서 전단지 돌리고 영업해서 자네가 공들여놓은 고객 빼 가면 기분 좋겠어?”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자네가 영업 2팀에 술 한 잔 사고 박 과장 좋은데 한 번 데려가. 그렇게라도 풀어야지 안 그래?”
필터가 거의 타들어갈 정도로 끝까지 다 태운 송 차장은 아쉬운 듯 마지막 한 모금을 깊숙이 들이마셨다가 아주 천천히 내뱉으며 말했다.
“그럼 강 과장이 잘 마무리 하는 걸로 알겠네.”
송 차장은 재떨이 대용으로 쓰이고 있는 빈 화분에 꽁초를 튕긴 뒤 곧 옥상 입구 쪽의 철제문 뒤로 사라졌다.
기억이 나지 않은 그 날에, 평소의 나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능력으로 5건의 계약을 딴 바로 그날에 왜 하필 다른 팀의 영업구역까지 가서 영업을 했는지 나는 또 하나의 의문을 가져야만 했다.
나의 일상은 쳇바퀴 돌 듯 어제가 오늘이 되고 오늘이 내일이 되는 그런 나날뿐이었는데 최근에 나의 쳇바퀴는 철망에서 떨어져 나와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초여름의 아침햇살이 유난히도 따가웠다. 난 별 볼일 없는 삭막한 옥상위의 풍경 속에서 담배 한 개비를 더 꺼내 물고 멍하니 서 있다가 불현듯 불어오는 바람이 왼 볼을 스치고나 서야 정신을 차리고 불을 붙였다.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