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작품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보고 있습니다.
예전에 다른 이토 회원분과 댓글로 이에 대해 의견을 나눈 적이 있지만 저는 작가와 작품을 구별해서 봅니다.
즉, 저는 어떤 작가가 일베를 하거나 혹은 소라넷을 하는 것에 대해 크게 편견이 없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작가가 어떤 행동 혹은 말을 했는가, (이를테면 반사회적인 표현의 물의)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많이들 언급하는 친일 문학에 대한 것도 마찬가집니다. 한 문학인이 친일을 했습니다. 그는 신문
지상이나 시나 글을 통해 일본에 대한 적극적 협조를 이야기합니다. 그럴 목적으로 쓴 글은 비판, 비난과 함
께 처벌받아야 마땅합니다. 많이들 생각하시죠. 친일을 한 후에는 그 이후에 어떤 열정을 갖든 간에 그 사람
의 진정성은 의심받을 수 밖에 없다고 말이죠. 그가 남긴 유산은 온전한 그 사람의 진짜가 아닐 거라고 말입니
다. 하지만 사람이라는게 매우 다양한 감정의 생물이어서 그렇게 어느 한쪽으로 재단할 수는 없습니다. 친일
과 다른 이야기지만 우리는 수많은 위인들의 업적 뒤에 숨은 그 사람의 어두운 그림자를 많이 알고 있습니다.
당장 어떤 여성 대통령의 아버지가 그러하시죠. 우리는 그 사람의 진정성을 모두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사람의 공과 과를 나누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하죠. 저는 그게 합리라고 생각합니다.
세계대전 이후 독일 전범 처형에 있어 가장 단호한 나라는 단연코 프랑스였습니다. 그야말로 피의 숙청이었죠.
하지만 그들이 남긴 문화 유산까지 몰수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또다른 의견에 의해 연구되었고 받아들여
졌죠. 다만 사실 관계의 적시와 당시의 시대상황,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부록으로 남겨졌습니다. 반면
교사란 측면도 있고 계속해서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죠. 실제 어떤 사람의 회고록은 그 사람은 죽는 날까지 자
신이 믿고 있는 (잘못된) 신념에 대해 반성의 기색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심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관심을 끌었죠. 무엇이 그토록 한 지성인을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해 가는가 하는 점에서 말입니다.
그렇지만 솔직히 비슷한 경험을 치른 우리 나라가 이러한 부분에 있어 매우 합리적으로 행동했었다고는 감히
자신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당장 그 시대만 해도 우리는 문학을 통해 단순히 청록파니 뭐니 하고 알고 있지만
당대의 일부 지식인들조차 사회의 불의에 적극적으로 항거하지 못 하는 모든 부류를 변절자로 규정 짓고 있었
던 것입니다. 해방 이후의 이 해묵은 감정이 카프 논쟁으로 벌어진 것이죠. 우리는 보통 이것을 문학적 역사라
고만 생각하는데 이것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인식, 신념의 충돌인 것입니다. 그냥 어떤 문학적 이
론을 갖고 입으로만 떠들어댄게 아니에요. 그 시대에서 분명 김수영은 박인환을 비판하고 그의 시가 비현실적
이라면서 원고지 이상의 값어치가 없다고 시상을 혹평했지만 오늘날 이 둘은 현대문학에 살아 남아 있습니다.
한국 전쟁 이후 한때 월북 작가와 카프 논쟁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영향받은 사람들의 작품은 모두 금지
되었지만 지금은 일부를 제외하고 해금되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재평가 작업을 받고 있지요. 그러나 아직까
지 교과서에는 여전히 카프 작가의 수록이 제한적입니다. 거의 없다고 봐도 좋습니다. 그 당시 참여와 투쟁을
이야기하던 사람은 나 아닌 남을 인정치 않는 날선 태도로 인해 반동으로 몰렸고 문학의 본질을 이야기하며
순수성을 탐구하는 사람들은 또다르게 변질되어 새로운 비극을 낳았죠.
저는 서정주를 뛰어난 시인이지만 부끄러운 삶을 산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분명 그는 자신의 변명과는
달리 친일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것으로 보이며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의 정권을 찬양하는 글을 썼었죠. 이
것은 그의 명백한 오욕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화 옆에서, 동천, 추천사, 자화상, 귀촉도 등의 문학적
가치가 훼손됐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서정주의 제자였다고 해서 모두 그 나물에 그 밥이었던 것만은 아닙니다.
고은 같은 사람도 있었죠. 그는 자신의 스승의 그러한 인간적 실망감을 고스란히 고발했습니다. 서정주는 자기
합리화를 위해 신동문과 순수와 참여 논쟁을 벌였죠. 30년대 시문학파를 언급하는 듯한 서정주의 발언은 과거
사회주의적 참여에 반대한 혹은 기피한 인사로부터 환영을 받았습니다. 조지훈, 박목월, 유치환, 이어령 같은
이가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죠. 김수영은 시대적 삶을 노래하는 것이 시인의 진정한 임무라고 생각했기에 서정
주의 모든 시에는 진정성이 없다고 잘라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참으로 용기있는 시인이었죠. 김수영은 서정주
를 자기 기만에 빠진 비겁한 시인으로 생각했던 겁니다. 좀 더 까놓고 말하면 문학을 정치적 협잡으로 되려 그
순수성을 해치고 있는 기망한 존재라고 평가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들여다보면 그런 구석이 없진 않았죠.
평가는 상대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정보나 오류로 인해 판단을 그르치게 된다면 그 또한 문제인 것
이죠. 물론 장르소설을 이런 범주에 넣을 수 있느냐는 또다른 문제입니다. 솔직히 그런 수준을 논하기엔 킬링
타임용이라는게 대개의 의견일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소수의 개념작이 있는 한 적어도 그런 시도를 하고
있는 작가를 위해서라도 평가는 합리적인 기초에 의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내 맘에 들고 안 들고
를 떠나서 좀 더 분명한 합리적 의심과 이유로 인해 사람과 글을 평가했으면 합니다.
* 여담으로 장르소설을 쓰면서 그런 발언이나 행동을 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쓰는 글에 어떤 자부심이나 애정
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결국 쓰레기는 쓰레기통 신세인 거죠. 너무나 당연한 귀결입니다.
상업성=퀼리티 라는 공식이 모호해지기 시작한지 좀 되긴했죠... 그래도 퀼리티가 높으면 어떻게든 팔리기는 하는데 뭐 읽어보지않고선 왈가왈부하기엔 좀 보기에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