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들의 운명 - 마이클 뉴턴 (영혼퇴행)
https://cafe.naver.com/newtoninstitute/174
지은이
마이클 뉴턴
LBL(Life Between Lives) 최면요법을 연구하는 <마이클 뉴턴 연구소>의 설립자이며 삶과 삶 사이 영혼의 기억을 이끌어 내는 LBL을 통해 영계의 신비들을 밝혀내는 선구적인 최면요법가이다. 40년 넘게 최면요법가로 활동해 왔으며, LBL 요법을 시행한 것은 30년이 넘었다. 《영혼들의 여행》 《영혼들의 운명 1,2》 《영혼들의 기억》 등 그의 저서들은 100만 부 가까이 판매되었고 30개 이상의 나라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현재는 상담 활동에서 한 발 물러나 강연과 훈련에 전념하고 있으며, 삶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강연자로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다. 최근에는 <마이클 뉴턴 연구소> 회원들의 상담 사례를 엮은 《영혼들의 기억》을 직접 편집했다.
http://www.newtoninstitut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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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들의 운명》을 읽은 독자들의 반응
《영혼들의 운명》 제2장에서 사랑하는 이의 영혼들이 어떻게 우리들을 위안하러 오는지를 읽고서 나는 기쁨에 넘쳐 울고 말았다.
- 캘리포니아 주 새크라멘토에서 수잔
뉴턴 박사의 가르침이 또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된 것이 기쁘다. 그의 첫번째 책인 《영혼들의 여행》을 읽고 알게 되었던 것보다도 더욱 깊은 이해를 영혼에 대해 가지게 되었다.
-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로라
《영혼들의 운명》은 《영혼들의 여행》을 읽고서 더 알고 싶어 갈증을 일으켰던 나와 같은 많은 사람들을 흥분시킬 것이다.
- 뉴욕 주 알바니에서 제리
당신의 책을 읽고 나서야 나는 이제까지 이해하지 못했던 섬광같이 스치는 사후 세계의 기억들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데이브
영혼에 관해 쓴 당신의 글은 그 질과 이해에 있어서 대단히 심오하다. 그러면서도 복합적인 아이디어를 단순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당신에게 가슴 밑에서부터 우러나는 진심의 감사를 드린다.
- 캘리포니아 주 리버사이드에서 도리스
이 나라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부정적인 사고의 종교관과 맞서는 당신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 캔자스 주 토피카에서 마샤
영혼의 세계를 질서와 사랑의 장소로 보는 당신의 해석은 고무적이다.
- 인디애나 주 재스퍼에서 트레이시
당신의 책은 큰 위안을 주며 위대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나의 두려움을 감소시켜준다.
- 프랑스 파리에서 르네
당신의 사례 연구에서 얻는 깨달음의 메시지는 그 값을 매길 수가 없다.
- 독일 본에서 홀츠
나는 현재의 삶에 내가 속해 있지 않은 것 같은 느낌과 깊은 외로움을 자주 느꼈다. 당신은 나의 그런 감정들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리고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를 볼 수 있게 해주었다.
- 영국 런던에서 레이첼
(영혼들의 운명 1,2 - 마이클 뉴턴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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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나의 아버지인 존H. 뉴턴에게 헌정한다.
어린 나에게 보도문적인(저널적) 글쓰기에 대한 사랑을 몸에 배게 하였고 나의 아들인 폴에게는 노년의 삶을 살며 유머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 책의 출간을 위해 수백 가지 사례들을 검토하여 나를 도와준 나의 아내 페기에게 감사한다. 원고를 읽어준 노라 뉴턴 메이퍼와 존 화헤이, 재클린 내시, 게리와 수잔 아아네스 그리고 나의 편집인인 레베카 진스에게도 각별히 감사드린다. 또, 1994년 《영혼들의 여행》이 출간된 이래(이후) 사후 세계에 대해 알게 된 것이 얼마나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말해준 많은 사람들에게도 나의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 그들이 결국은 시간의 저쪽으로 그들을 다시 한번 데려가게끔 나를 설득한 것이다.
(영혼들의 운명 1,2 - 마이클 뉴턴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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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 대하여
카운셀링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마이클 더프 뉴턴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공인된 마스터 최면요법 시술사(Master Hypnotherapist)이며, 미주 지역 카운셀링 협회의 회원이다. 그는 여러 고등 교육기관에서 교사로서, 관리자로서, 카운셀러로서 일해 오고 있으며, 정신건강 분야의 여러 주립 기관에서 약물 사용자들의 그룹 지도자로 일하였다.
현재 그는 행동 교정에 의한 치료와 사람들이 영적인 자신을 접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자신만의 고유한 퇴행최면요법을 개발시켜 나가던 그는 피술자들의 전생 경험을 알아내는 것보다 윤생 사이에 존재하는 영혼을 아는 것이 더욱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의 이 첫 책은 영혼 세계에 대한 수년간에 걸친 연구 결과이다. 역사가이며, 아마추어 천문학자이며, 온 세상을 여행하는 여행자이며, 열렬한 하이커(도보 여행자)이기도 한 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살다가 현재는 캘리포니아 북쪽에 있는 시에라 네바다 산속에서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첫책 《영혼들의 여행》이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영혼들의 운명 1,2 - 마이클 뉴턴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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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문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류웰린 출판사에서 1994년에 나온 책 《영혼들의 여행》에서 나는 오래 된 이런 의문들에 해답을 주려 노력하였다. 영혼 세상의 삶이 어떠한지를 그처럼 세부적으로 쓴 책을 읽은 일이 없었기에 《영혼들의 여행》을 읽고 나서 진실한 자아가 깨어남을 느꼈다고 많은 사람들이 애기하였다. 《영혼들의 여행》은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감정들과 다시 지구로 돌아와 사는 현실의 목적을 알게 해주었다고도 말했다.
책이 출간되고 잇달아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이 되자 세계 각국의 독자들로부터 또 다른 책이 나올 것인가 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오랫동안 나는 다른 책을 쓰고 싶지가 않았다. 연구에 바쳤던 세월을 다시 끌어들여 오리지널 사례들을 정돈하고 그것을 또 함축해서 영원불멸한 우리의 삶을 글로 정리한다는 일이 힘겹게 여겨졌다. 나로선 이미 할 만큼 다 했다는 느낌이었다.
《영혼들의 여행》 서문에서 전통적인 공부를 한 최면심리 치료가인 나의 경력과 내가 형이상학적인 기억들을 끌어내려고 최면을 사용하는 데 대해서 얼마나 회의를 느끼고 있었는지를 설명한 바 있다. 15세인 1947년에 첫 최면을 걸었으니 나는 분명 옛 학파에 속하지 뉴 에이지 사람은 아니겠다. 그러므로 그럴 의도가 없었음에도 내가 피술자를 영혼 세계의 관문으로 들어가게 했을 때 나는 너무도 놀라고 말았다. 최면요법가의 대부분은 영혼들의 세계를 안개에 싸여 하나의 전생과 그 다음 인생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할 뿐인 몽롱한 지옥의 변방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같이 내게는 느껴진다. 내 스스로가 영혼 세계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단계들을 알아내어 신비스런 그곳에 있는 영혼 존재의 기억을 열겠다는 의도가 분명해졌다. 홀로 몇 년간의 연구 끝에 나는 영혼 세계의 구조를 알 수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이 환자들이 치유되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무신론자이건 심오하게 종교적이건 그 외 또 어떠한 철학적인 사유를 믿건, 일단 최면으로 초의식 상태에 들면 사람들이 모두 같은 애기를 한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이런 연유로 나는 영적인 최면요법가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사후 삶의 전문가라는 것이다.
나는 《영혼들의 여행》에서 죽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죽은 뒤 저 세상으로 건너가면 영혼의 세계에서 누가 우리를 맞아주며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다시 태어나기 위해 새로운 육체를 선택하기까지의 경로들을 압축시켜 차례대로 적어놓았다. 윤회하는 전생의 삶들 사이에 육체를 벗고 영혼으로 있던 때의 경험을 피술자로부터 얻어내어 시간 순서대로 여행지같이 기술하였다. 《영혼들의 여행》은 또 다른 전생에 관한 책이라기보다는 최면을 사용하여 일찍이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정리해본 형이상학적인 연구서이다.
영혼의 세상이 어떤 형태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정리해보던 1980년대에, 나는 다른 형태의 최면요법은 딱 문을 닫아버렸다. 사례 분량이 많아져가면 갈수록 나는 영혼 세계의 비밀들을 벗겨내는 일에 미친 듯이 집착하게 되었다. 집착해서 파고들수록 이미 발견했던 것들을 확인하고 확신할 수가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영혼의 세계만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동안에는 연구에 관계된 피술자와 그들의 친구들만 만나며 홀로 공부하였다. 형이상학적인 책들을 취급하는 서점에도 가지 않았다. 어떠한 외부의 영향도 없는 절대적인 자유를 원했다. 내가 혼자 고립되어 공부하고 공공연히 연구에 대해 발설하지 않은 것은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 같다.
은퇴하고 로스앤젤레스를 떠나 시에라 네바다 산 속으로 들어가서 《영혼들의 여행》을 쓸 때, 나는 무명의 인물들 속으로 사라질 것을 기대했다. 그것은 망상이었다. 《영혼들의 여행》 속에 있는 내용들은 한 번도 출판된 일이 없는 것이었고, 나는 출판사를 통해서 많은 편지들을 받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연구를 출판해준 류웰린 출판사의 안목과 용기에 고마운 빚을 지고 있다. 책이 나온 후 곧 나는 강연과 TV 인터뷰에 불려다니게 되었다.
영혼의 세계에 대해서 사람들은 더욱 세세히 알고 싶어하였고 또 다른 연구 자료들이 있느냐고 계속 물어 왔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해야 했다. 사실 나는 넓은 범위의 다양한 정보들을 가지고 있었으나 다 발표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무명의 저자에게서 나온 이런 정보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영혼들의 여행》이 5판 인쇄에 들어갈 때 색인에다가 어떤 이슈는 확대 해석을 붙이기로 하고 책의 표지를 새로 바꾼다는 선에서 절충을 보았다. 그것은 충분하지가 못하였다. 한 주 한 주 지나갈수록 사후 삶에 대한 질문을 담은 우편물들은 어마어마한 양으로 증가해 갔다.
이제 사람들은 나를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나는 일정한 한도 내에서 다시 일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전보다 더 진보된 영혼들이 더 잦은 빈도로 나를 찾아왔다. 그들은 내가 반쯤 은퇴 상태에 있어 작업의 양이 크게 줄어들 때를 기다린 듯했다. 그 결과 나는 심리적인 위기에 처해 있는 어린 영혼들보다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는 피술자의 사례들을 더욱 많이 접하게 되었다. 그들은 인생의 특별한 목표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하여 영혼 세계의 기억들을 끌어내고 싶어하였다. 영혼 세상에서의 일들을 더 알고 싶어서 내게 자신을 맡겨준 분들 중에는 치유사와 선생들이 많았다. 그분들이 내 연구에 도움을 주었던 만큼 나도 그분들의 인생길에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이렇게 지내는 동안 사람들은 내가 모든 비밀을 다 드러내지 않았다는 인상을 받는 듯했다. 나의 마음은 마침내 어떤 식으로 두번째 책을 쓸까 하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 결과로 《영혼들의 운명》이 태어났다. 첫번째 책인 《영혼들의 여행》은 영원무궁하게 흐르는 위대한 강인 영계를 순례해본 순례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행은 육체가 죽는 바로 그 순간의 강 어귀에서 시작되어 우리가 새 몸으로 태어나는 곳에서 끝났다. 《영혼들의 여행》 속에서 나는 창조의 원천까지 거슬러 가볼 수가 있었다. 원천은 변함이 없다. 우리들 각자의 마음속에 깃들인 영혼 여행에 대한 기억은 셀 수 없지 많지만, 윤회를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 가운데에는 원천 이상으로 나를 끌고 갈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는 듯이 보인다.
《영혼들의 운명》은 강물 따라 여행을 떠난 여행자들이 겪게 되는 부수적인 경험들을 세세히 밝혀보려는 의도로 쓰여졌다. 이 두번째 여행을 하는 동안에 나는 독자들이 여행 전체를 조감해볼 수 있도록 숨겨진 길의 양상을 《영혼들의 여행》 때보다 더 벗겨보려 노력하였다. 영혼 여행의 시간과 장소를 순서적으로 따르기보다는 화제 중심으로 책의 형태를 잡았다. 그래서 영계의 장소와 장소 사이를 옮겨가는 영혼의 기본 움직임을 시간대와 겹치도록 하였다. 영혼이 하는 경험들을 충분히 분석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였다. 나는 또한 읽는 이들이 영혼의 삶에 있는 공통 요소들을 여러 사례를 통해 알아보게 하고 싶었다. 인류에게 도움을 주려 존재하고 있는, 믿을 수 없도록 신비스런 삶의 질서와 섭리에 대한 이해를 이 책이 넓혀주었으면 기쁘겠다.
동시에 경이로운 영혼의 세상을 처음 접하는 여행자들에게도 이 여행이 신선함과 즐거움을 제공했으면 한다. 나의 책을 처음 읽는 독자들을 위해 이 책의 첫 장에는 윤생 사이에 있는 우리들 영혼의 삶에 대해 내가 발견했던 것들을 집약해서 정리해놓았다. 이것이 《영혼들의 운명》을 읽어나가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어쩌면 당신은 나의 첫 책인 《영혼들의 여행》도 찾아 읽고 싶어질는지 모르겠다는 희망을 품어본다.
이제 두 번째 여행을 떠나는 이 마당에서 마음의 영적 관문을 열기 위해 노력한 이 고된 작업에 지대한 성원을 보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여러분의 성원과 수많은 영혼의 안내자들, 특히 내 안내자의 도움으로 나는 이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영혼의 세상을 알리는 의미 깊은 이 작업에 내가 하나의 메신저로서 선택받게 된 것을 나는 깊은 축복으로 여기고 있다.
(영혼들의 운명 1,2 - 마이클 뉴턴 p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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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들의 세상
죽음의 순간에 우리들의 영혼은 머물렀던 육체를 빠져나간다. 영혼이 오래 되어 전생의 경험들이 많다면, 그는 그 즉시 자유로이 본향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진보된 영혼들에게는 맞아주는 영혼도 없다. 그러나 나와 함께 일한 대부분의 영혼들은 지구 근처의 영계를 건너면 바로 안내자들을 만나게 된다. 어린 영혼들이나 어린아이로서 죽은 영혼들은 누가 가까이 와줄 때까지 잠시 어리둥절해할 수도 있다. 죽음의 장소에 잠시 동안 머물기를 원하는 영혼도 있으나 대부분은 즉시 떠나고 싶어한다. 시간이란 것이 영계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이거나 기타 다른 이유로 죽음의 장소에 잠시 동안 머물기를 원하는 이들은 시간의 상실을 느끼지 않는다. 영혼에게는 순서적으로 흐르는 시간이 아닌 '현재'라는 시간만이 있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멀어질수록 영혼들은 그들 주변의 빛이 밝아지는 것을 경험한다. 어떤 영혼들은 잠시 회색빛 도는 어두움을 보기도 하고 터널이나 관문을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 두 가지 현상의 차이점은 영혼이 빠져나가는 속도 때문이다. 그래서 피술자들이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다. 영혼은 안내자들이 잡아끄는 느낌을 인자하게 또는 강하게도 느끼는데, 그것은 갑작스런 변화에 적응하는 영혼의 성숙도와 능력에 상관되는 것이다. 영혼들은 초기에 주변에서 '성긴 구름' 같은 것을 만나나 곧 맑아져서 먼 곳까지 볼 수 있게 된다. 이때 보통 영혼들은 귀신 같은 형태의 에너지가 자신에게로 오는 것을 보게 된다. 혼자이거나 혹은 둘인 이 에너지들은 사랑하는 영혼의 동반자일 수는 있으나 일반적으로 우리들의 안내자는 아니다. 우리를 앞서간 배우자나 친구가 맞이하러 오는 경우에는, 우리가 그들을 만나는 동안 우리의 안내자는 가까이에서 기다려준다. 이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예수나 부처 같은 종교적인 인물이 맞으러 나왔다는 피술자를 나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나 부처 같은 지구의 위대한 스승들이 지닌 사랑의 정수는 우리들에게 개인적으로 할당된 안내자들에게 내재되어 있다.
영혼들이 본향이라고 부르는 장소에 다시 익숙해질 때쯤이면 지구적인 것은 변한다. 우리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특별한 감정이나 성격, 용모를 가진 그런 인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영혼들은 최근에 맞은 육체의 죽음을 그들이 사랑했던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슬퍼하지 않는다. 지구에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우리들의 영혼이지만 육체가 없으면 우리는 더 이상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아니다. 영혼이 지닌 존엄성이란 설명이 불가능할 지경이다. 나는 영혼을 지능을 지닌 빛의 에너지 형태라고 생각하고 싶다. 죽고 난 즉시 영혼은 갑자기 다르게 느낀다. 두뇌와 신경 조직으로 이루어진 육체에 잠정적으로 갇혀 있다가 벗어났기 때문이다. 어떤 영혼은 다른 영혼들보다 적응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
영혼의 에너지는 동일한 부분이 둘로 나뉠 수가 있다. 입체사진과 흡사하다. 나뉜 영혼은 서로 다른 육체를 가지고 동시에 삶을 살기도 하지만 우리가 듣는 것처럼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영혼은 이중적인 능력을 가졌기에 우리들 빛 에너지의 일부는 항상 영혼의 세상에 남겨져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본향에 갈 때 지구의 햇수로 30년 전에 돌아가셨다가 윤회하여 육체로 태어난 어머니의 마중을 영혼 세상에서 받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들 영혼 그룹에 합치기 전에 안내자와 오리엔테이션을 갖는다. 그 기간은 영혼에 따라 다르고 같은 영혼의 경우에도 삶마다 달라진다. 방금 마친 인생에서 겪었던 모든 좌절을 털어놓고 상담하는 고요한 시간이다. 이해심이 깊고 사랑이 많은 스승이자 또한 안내자인 존재가 다정하게 우리가 살고 난 삶에 대해 질문을 하는 시간을 갖는다.
우리가 계약을 맺었던 인생 목표에서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혹은 하지 못했는가에 따라 상담의 기간은 길어지기도 하고 짧아지기도 한다. 특별한 카르마(karma) 문제도 나오긴 하지만, 카르마는 나중에 우리가 영혼 그룹으로 돌아갔을 때 세밀히 살펴보게 된다. 돌아오는 영혼 중에 어떤 영혼은 그들의 영혼 그룹으로 곧바로 가지 못한다. 그런 영혼들은 육체적인 몸에 오염되어 죄악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누구를 해칠 생각이 없었는데 잘못을 저지르고 만 것과 의도적으로 악을 행한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한 행위의 정도도 주의 깊게 살펴보게 된다.
악과 관련되었던 영혼들은 피술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중환자실’ 이라고나 할 특별한 곳으로 데려가게 된다.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거기에서 그들의 에너지는 다시 온전해지도록 재구성된다. 지은 죄의 성격에 따라 이런 영혼들은 좀더 빠르게 지구로 윤회하여 돌아오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이 저질렀던 악한 행위의 희생자가 되는 삶을 다음 생에서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배우는 데에 게으름을 부리고 특히 여러 번의 삶을 그렇게 잔인하게만 산다면 그는 잘못된 행동의 형상으로 치부되고 만다. 그러한 영혼들은 영혼의 세상에서 고립된 곳에 오랫동안, 어쩌면 지구의 세월로 1000년 이상을 지낼 수도 있다. 고의적이었건 의도적이었건 영혼이 잘못한 일은 내생에서 어떤 형태로든지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 영혼 세상의 지침이다. 이것은 형벌도 아니고 고행이라고 할 것도 아니다. 카르마적 성장을 위한 기회인 것이다. 지옥이란 것이 지구에나 있다면 있을까, 영혼들에게는 지옥이 없다.
어떤 삶은 너무도 고달파서 영혼들이 지쳐서 돌아온다. 돌아올 때 관문에서 안내자들이 그들의 에너지를 우리들 에너지에 합쳐 원기를 북돋아주어도 여전히 기진맥진할 수도 있다. 이련 경우에는 축하해주기보다 혼자 가만히 있도록 해준다. 실제로 많은 영혼들이 자기들 그룹으로 돌아가기 전에 쉬고 싶어한다. 우리들의 영혼 그룹은 성격이 활발할 수도 있고 얌전할 수도 있으나 우리가 지구에서 살고 온 경험을 언제나 존중해준다. 모든 그룹은 돌아오는 그들의 친구를 깊은 사랑과 우정으로 환영한다.
본향으로 돌아오는 일은 즐겁다. 특히 친밀한 영혼의 동반자들과 카르마적인 접촉이 별로 없었던 육체의 삶을 마친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포옹과 웃음과 유머에 넘치는 환영을 받는다고 대부분의 피술자들은 말하고 있다. 영혼 세계에서는 큰 경사로 여겨지는 것 같다. 감정이 넘쳐흐르는 그룹에서는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돌아오는 영혼을 환영하기 위해 정성껏 계획을 세운다. 한 피술자는 귀향의 환영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바로 지난 번의 생을 마쳤을 때 나의 그룹은 음악과 포도주와 춤과 노래로 야단스런 파티를 열어주었습니다. 우리가 여러 생을 함께 살았던 고대에 유행했던 대리석으로 지은 방과 길다란 의상과 이국적인 가구로 고전적인 로마 시대의 축제를 그대로 재현해내었습니다. 나의 주된 영혼의 동반자인 멜리사가 맨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녀를 가장 좋게 기억하는 바로 그 나이를 재창조해서 변함없이 눈부신 모습을 하고 있었어요.
영혼의 그룹의 구성원은 3~25명 정도로 그 규모가 다양하나 평균적으로는 15명 정도이다. 가까운 곳에 있는 영혼 그룹이 서로 합치기를 원할 때도 있다. 이런 경우는 대개 오래 된 영혼들에게서 일어나는데, 수백 번 이상의 윤생을 살면서 다른 그룹의 영혼들과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수백만 시청자가 1995년에 파라마운트 영화사가 제작한 TV 프로그램 <관찰>에서 내 작업의 일부를 보았다. 사후 삶에 대한 이 프로그램을 본 사람들은 피술자 중의 하나인 콜린이 나와 가졌던 최면 면담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녀는 전생을 마치고 본향으로 돌아갔을 때 17세기 화려한 의상을 떨쳐 입은 성대한 무도회가 열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가 돌아오는 것을 축하하기 위하여 1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인 것을 보았다고도 했다. 그녀가 사랑했던 때의 시간과 장소를 화려하게 재생하여 그녀로 하여금 새 삶의 과정을 멋지게 시작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귀향은 두 가지 형태를 취한다. 소수의 영혼은 돌아오는 영혼을 관문에서 맞아주고는 오리엔테이션을 받게끔 안내자에게 인도하고 떠난다. 더 흔한 경우는 영혼 그룹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준다. 이 그룹은 교실 같은 데 모여 있을 수도 있고, 사원의 층계 주변에 있을 수도 있고, 정원에 있을 수도 있다. 돌아오는 영혼은 서재 같은 곳에서 많은 그룹들을 한꺼번에 보기도 한다. 자신의 장소로 영혼이 돌아갈 때 전생에서 알았던 영혼들이 있는 다른 그룹을 지나치게 되면 그들은 미소를 짓거나 손을 흔들어 귀향을 알아준다고 말한다.
영혼 그룹의 덩어리들이 어떻게 위치하고 있는지에 대한 피술자의 시각은 영혼의 진보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누구든지 교실 같은 분위기에 대해서만은 뚜렷하게 기억한다. 영혼의 세상에서 교육을 위한 반의 편성은 영혼의 발전 단계와 관계가 있다. 단순히 지구가 석기 시대였을 때부터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는 영혼이 높은 경지에 도달했다고 할 수가 없다. 나는 4000년이나 걸린 과거 생을 겪고 나서야 질투심을 극복할 수 있었던 한 피술자의 경우를 강연할 때 자주 인용한다. 오늘의 그는 질투심 많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참을성 없는 자기 자신과 싸우는 일에 별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지구에 있는 교실에서처럼 어떤 교훈을 배우는 일에 있어 어떤 사람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높은 경지로 진보된 영혼들은 지식과 경험 면에서 오래 된 영혼들이다.
《영혼들의 여행》에서 나는 영혼들을 초보 영혼, 중간 영혼, 진보된 영혼으로 대강 구분짓고 각 발달 단계의 의미를 사례를 들어 설명하였다. 각 영혼은 각기 나름대로 강점과 부족한 점을 지녔지만, 일반적으로 발전의 수준이 비슷한 영혼들이 모여 하나의 그룹을 이루고 있다. 그룹은 각자가 지닌 특징으로 균형을 이룬다. 영혼들은 육체를 가지고 살았던 경험과 육체의 느낌과 감정들에 대처해나가는 방법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며 서로를 가르쳐준다. 생의 모든 면이 해부된다. 더 큰 이해를 얻기 위하여 심지어는 그룹 내에서 역할을 바꾸어보는 일까지도 한다. 영혼이 중간 단계에 이르게 되면 특별한 기술이 요구되는 관심 있는 주요 분야를 전문화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장에서 더 깊이 얘기하겠다.
이 연구에서 내가 얻을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일 중의 하나는 영혼의 세계에서 영혼들이 나타내고 있는 에너지 빛깔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빛깔들은 영혼의 발전 상태와 관련이 있다. 수년이 걸려서야 얻어낼 수 있었던 이 정보로, 피술자들의 진보 정도를 알 수 있고 최면 상태에 든 피술자가 보는 다른 영혼들을 구분할 수 있다.
순수한 흰빛은 어린 영혼을 나타내며, 영혼이 진보함에 따라 에너지는 짙어지고 주황색에서 노랑, 초록, 그리고 마침내 청색 계열로 들어간다. 모든 그룹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 빛깔의 주변에는 미묘한 후광으로 옅은 빛깔이 서려 있어 각 영혼의 성격적인 면모를 나타내고 있다.
나는 영혼들의 발전 단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더욱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초보 영혼들인 1단계부터 시작해서 여러 배움의 과정을 거친 마스터(master)들의 영혼인 6단계까지 분류했다. 대단히 진보된 이런 마스터 영혼들은 짙은 보랏빛을 띠고 있다. 이들보다 더 높은 단계의 영혼도 있다는 것에든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내가 피술자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다. 나는 아직도 윤회를 계속하고 있는 피술자들한테밖에는 이야기를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영혼들의 자리매김에 있어서 ‘단계’라는 말로 구분하는 것을 솔직히 좋아하지 않는다. 영혼들이 각각의 시기에 각자 성취하여 발전한 정도를 무시해버리고 뭉뚱그려 1단계 영혼, 2단계 영혼 하는 식으로 묵어버린 것 같아서이다. 나의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피술자들은 배움의 사다리 어디쯤에 그들이 위치하고 있는지를 표현할 때 ‘단계’라는 말을 사용한다. 피술자들은 또한 자신들이 이룬 성취에 대해서 상당히 겸손하다. 나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진보된 영혼이라고 말하는 피술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일단 최면에서 깨어나면 자기 만족감에 찬 마음으로 피술자들은 최면 때보다 덜 겸손한 말들을 한다.
최면이 깊어 초의식 상태에 이른 피술자들은, 영혼의 세계에서는 다른 영혼을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낮춰 보는 일이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현재보다 더 큰 깨달음을 얻으려고 변화하는 과정 속에 있다. 배움의 길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우리들 각자는 자기만이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으로 완전한 하나에 공헌하고 있다. 이것이 진실이 아니라면 우리는 애초에 창조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영혼의 진보에 따른 빛깔이라든가 발전의 단계, 교실, 선생, 학생, 이런 말을 듣고 영혼의 세계를 계급 사회가 아닌가 짐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피술자들은 모두 이런 결론은 아주 틀린 것이라고 말한다. 무슨 층이 있다면 그것은 정신적인 깨달음에 앞섰다거나 뒤에 있다거나 하는 뜻 정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지구에서 조직화된 권위란 권력 다툼이나 경쟁을 뜻하며 구조 내에서 정해진 규범으로 사람을 조종하는 것을 뜻한다. 영혼의 세계에도 구조는 있으나 그것은 지구의 것과 아주 다른 것으로, 자비와 조화와 윤리와 도덕의 고귀한 모형 안에 존재한다. 나의 경험으로 보면, 영혼의 세계에는 영혼들의 임무를 총망라하여 관장하는 중앙 기관이 있다. 우리를 압도하는 친절함과 인내심과 참을성과 절대적인 사랑이 여기서는 가치를 발휘한다. 그곳의 애기를 할 때면 피술자들은 겸손해진다.
우상파괴주의자이며 일생 동안 권위를 거부하여 내가 동질감을 느끼는 대학 때의 친구가 투손에 살고 있다. 이 친구는 나의 피술자들의 영혼이 그들의 운명을 조종할 수 있다고 믿도록 '세뇌'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워한다. 그는 어떤 종류의 권위건 권위란 것은 - 심지어는 영적인 권위마저도 - 부패와 특권의 남용 없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나의 연구가 저 세상의 질서를 너무 많이 드러내고 있는데 그걸 좋아할 수 없다고도 한다.
어찌 되었건 피술자들은 과거에 수많은 선택권이 있었듯 미래에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자신에 대한 책임을 완전히 지는 것으로써 위치가 진보된다는 것은 지배자가 된다든가 지위가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 잠재된 가능성을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영혼의 세계에는 존엄성과 개인적인 자유로움이 어디에고 넘쳐흐른다.
영혼의 세계에서는 윤회를 하라든가 그룹이 하는 일에 참가하라고 강요당하지 않는다. 영혼은 혼자 있고 싶으면 혼자 있을 수 있다. 임무를 맞아서 발전하기 싫다면 그 희망 또한 존중된다. 한 피술자는 말했다. "나는 많은 생을 편안하게 스케이트 타듯 살아왔는데 그게 좋았습니다. 힘들게 사는 건 싫었습니다. '이제 그게 바뀌려고 합니다' 하니까 안내자가 말합니다. '당신이 준비되면 우리도 준비된다'고요." 영혼의 세계에는 자유가 많으므로 죽은 뒤 이런저런 이유로 지구 주변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으면 안내자들은 우리가 본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칠 때까지 머물도록 허용해준다.
영혼의 세계 안에서든 밖에서든 우리에게는 많은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이 보여주었으면 한다. 이러한 선택들이란 자신에 대한 신뢰가 가치 있음을 증명하고자 하는 영혼들의 지극한 갈망임이 내게는 분명하게 느껴진다. 이 도정에서 우리가 여러 실수를 하리란 것은 예측했던 일이다. 더욱 위대한 선함 쪽으로 다가가려는 노력과 우리를 창조해낸 원천과 합일하고자 하는 노력이 우리들 영혼 활동의 중요한 동기가 된다. 육체의 형태로 윤회할 기회가 주어진 것에 대해 영혼들은 겸손한 느낌을 품는다.
최면 면담 때 피술자들이 창조의 원천을 보는가 하는 질문을 나는 많이 받는다. 나는 서문에서 윤회를 아직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하고 일하고 있는 관계로 인해 원천으로 흐르는 강물까지밖에 갈 수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진보된 영혼을 지닌 피술자들은 '가장 성스러운 분들'을 만나뵈올 시간에 대해 애기한다. 모든 것을 다 아는 전지전능한 존재는 짙은 보랏빛 영역 안에 존재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는 없으나, 우리가 원로(Elder)들의 회의에 나갈 때면 그 존재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윤회를 계속하는 삶과 삶 사이에서 우리는 한 번이나 혹은 두 번쯤 우리들의 스승 - 안내자(teacher-guide)보다 한 계단이나 두 계단 더 높은 존재들의 모임인 그 그룹을 방문하게 된다. 나의 첫번째 책 《영혼들의 여행》에서 나는 이러한 만남을 두 개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였다. 이 책에서 나는 내가 가볼 수 있는 한 창조자에 가장 가까운 존재인 이러한 마스터들을 방문하는 데 대해 더욱 상세히 설명하겠다. 왜냐하면 여기서 영혼들이 드높은 신성한 지식의 원천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피술자들은 이 에너지를 '임재하신 존재(the Presence)'라고 부른다.
회의는 영혼을 재판하고 잘못한 일에 대해 형을 내리는 법정도 아니고 판사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가끔씩 이 회의에 나가는 일이 학교에서 교장실로 불려가는 것과 같다는 애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이 회의의 회원들은 우리가 저지른 실수들과 다음 생에서는 이 부정적인 행동들을 어떻게 교정할 것인지에 대해 애기하고 싶어한다.
다음의 생을 시작함에 있어 어떤 육체가 적당한지에 대해서도 이곳에서 고려한다. 다시 태어날 시간이 가까워지면 우리는 어떤 공간에서 다음 인생 목적에 부합할 만한 육체를 여럿 살펴본다. 또 여기서 우리들은 미래를 내다볼 기회를 가지며, 최종적으로 육체를 선택하기 전에 여러 육체들을 실제로 시험해본다. 영혼들은 카르마의 빚을 갚을 수 있거나 지난 생에서 문젯거리였던 일들을 다른 각도에서 보고 교훈을 얻기 위해 덜 완전한 육체와 힘든 인생을 스스로 선택한다. 대부분의 영혼들은 이곳에서 자기들에게 제공된 육체를 받는다. 영혼은 제공된 몸을 거부할 수도 있고 심지어는 윤회를 지연시킬 수도 있다. 영혼은 지구 아닌 다른 행성에 잠시 가고 싶다고 요청할 수도 있다. 새로운 삶을 받게 되면 우리는 대개 준비 교실로 보내진다. 거기에서 우리는 앞으로 오는 인생에서 일어날 일, 특히 우리들의 주된 영혼의 동반자가 우리들의 삶 속으로 오는 순간의 어떤 표지와 단서들을 마음에 새긴다.
마침내 지구로 돌아갈 시간이 되면 우리는 친구들에게 일시적인 작별의 인사를 하고 지구로 떠나는 여행을 위한 장소로 인도되어 간다. 영혼은 산모의 자궁 속에 들어 있는 육체에 가서 합친다. 때로는 임신 3개월이 지난 후에 들어가기도 한다. 영혼이 자궁으로 가는 것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충분히 함께 일할 수 있는 육체적인 두뇌를 갖기 위해서이다. 태아 상태일 때 영혼들은 불멸의 존재인 자신을 아직도 기억하면서 육체적 두뇌 작용과 육체적인 자아에 익숙해져간다. 태어나고 나면 기억에는 망각의 휘장이 내려덮이고, 영혼들은 그들의 불멸성을 인간적인 마음과 합쳐 새로운 개성에 걸맞은 특성의 조합을 이루어낸다.
피술자들이 최면의 초기 상태에 들어 있을 때 나는 일련의 훈련 양식을 체계적으로 적용하여 영혼의 마음에 접근하는 방식을 쓴다. 이 과정은 피술자들이 과거를 점점 더 선명히 기억하게 하고 피술자들로 하여금 영혼 세상에서 보는 삶의 이미지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일상적인 인터뷰를 마치고 나면 나는 피술자들을 아주 빠르게 최면 상태로 이끈다. 깊게 유도하는 이 최면 방법은 나의 비법이다. 장기간에 걸친 임상실험의 결과, 나는 정상적인 알파(alpha) 상태의 최면은 영혼 마음의 상태인 초의식에 이르기에는 충분치 못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초의식 상태를 얻기 위해서는 피술자를 깊은 최면인 세타(theta) 상태로 끌고 가야 한다.
숲이나 바닷가를 피술자들에게 한 시간 정도 상상하게 한 후 그들을 어린 시절로 데리고 가는 방법을 쓴다. 열두 살 때 집 안에 있던 가구나 열 살 때 좋아서 입었던 옷, 일곱 살 때 제일 사랑했던 장난감, 두 살과 세 살 사이에 있었던 기억의 세밀한 부분들을 물어본다.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피술자를 데려가기 전에 이 모든 것을 하고, 그러고는 바로 전의 전생을 간략하게 살핀다. 피술자가 그 인생의 죽음 장면을 지나 영혼 세계의 관문에 도달하면 나의 고리는 완성된 것이다. 한 시간 넘게 계속 깊은 최면으로 유도하여 피술자가 지구적인 환경을 떠나게 한다. 영적인 삶에 대한 강도 높은 질문에 세밀한 부분까지 대답할 수 있도록 해놓는다. 이에 두 시간쯤이 소요된다.
영혼의 본향에서 돌아와 최면에서 깨어난 피술자들의 얼굴에는 전생만을 보았을 때는 경험할 수 없었던, 더욱 심오한 경외감이 서린다. "영혼은 내 능력의 한계로는 해석할 수 없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유동체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한 피술자는 말했다. 영원 불멸한 자신을 알게 된 것이 얼마나 인생관을 변화시켰는지에 대해 많은 피술자들이 내게 편지를 보내온다. 다음은 그러한 편지 중의 하나이다.
진정한 나의 정체성을 알고 나서 나는 형언할 길 없는 기쁨과 자유를 얻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 앎이 항상 내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비판 없는 나의 마스터를 만났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황홀경에 잠기게 됩니다. 이 물질계의 인생에서 진실로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사는 방법과 우리들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삶에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자비심과 포용보다 더 큰 의미는 없습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죽고 나서는 어디로 가는지가 막연한 느낌을 벗어나 이젠 확실한 지식이 되었습니다.
나는 보고자이며 또한 전달자로서 67가지의 사례와 인용문을 가지고 내가 발견한 것들을 이 책에 썼다. 강연을 할 때마다 먼저 나는 청중들에게 강연 내용이 우리들의 영적인 삶에 대한 '나의' 진리임을 말한다. 진리로 가는 관문은 여럿이다. 나의 진리는 오랜 세월 동안 함께해준 다양한 피술자들에게서 얻어낸 위대한 지혜의 산물이다. 나의 말이 여러분이 지닌 선입견이나 신앙이나 개인적인 사상과 위배된다면 여러분에게 맞는 것만 취하고 나머지는 무시하라고 권한다.
(영혼들의 운명1 - 마이클 뉴턴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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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후기
김지원
우리 영혼 안에는 슬픔이 있다고 이 책의 저술자는 말한다. 영혼 안에는 영혼 자체의 발전 수준과 관계없이 어느 영혼이나 다 똑같은 이유를 가지고 혼의 완성을 추구하며, 완성에 대한 동경 때문에 슬퍼하는 것이라고 한다.
바닷가의 노을, 밤하늘의 별, 내리는 눈발, 아이의 울음 소리, 기적 소리, 밥짓는 소리, 가정, 국가, 교회당, 사찰, 국회의사당, 공항, 이 땅에 막 도착한 외계인처럼 모든 게 낯설어서 어디 딴 데 속해 있는 것같이 외로운 극도의 향수감-이름 붙일 수도 없고 이유도 없고 이유도 모르겠는 그러한 감정이 영혼으로부터 연유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기에 이 책이 고맙다. 아마도 영원히 고마워할 것 같다.
하루에도 몇 번씩 위험스럽도록 정의롭고 히스테리컬한 종교 전도가들은 아파트의 벨을 누르고 우리 모두 죽을 목숨이나 믿으면 살 길이 있다고 한다. 계룡산 어디 가서 때를 기다리며 살고 있으면 새 세상이 온다고 하는 종교가도 본다. 우리가 쉬임없이 찾고 끝없이 공부하고 싶은 것이 천당에 가고 극락에 가고 인류 멸망의 날에 뽑혀서 살기 위함인가?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알고 싶어서가 아닐까? 나 자신을 보아도 그렇고 이 책을 보아도 그렇고 우리 영혼 안에는 알고 싶어하고 완성을 그리는 본능이 이미 있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 말로 사람은 살(肉)과 앎(얼)의 합성어로, 그 어원은 사랑이라고 한다. '사람'의 미음 받침의 모가 깎이면 사랑이 된다고 한다. 서로 이끌어주고 격려해주는 영혼들의 세상, 원천이 설정한 자연 법칙은 준엄하나 우주를 지배하는 마음은 오직 사랑임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사람이 무엇인지를 사람인 우리들에게 깨닫게 해주고 있다. 우리들의 아이들과 후손들이 살 이 지구, 어쩌면 우리들이 다시 와서 살지도 모를 이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가려는 노력만이 몹시도 귀중한 것임을 알게 해준다.
(영혼들의 운명1 - 마이클 뉴턴 p32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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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후기
첫번째 책인 《영혼들의 여행》이 발간되자, 적지 않은 독자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들 대부분이 신비한 것을 알게 된 놀라움을 말하며 뉴턴 박사가 쓴 또 다른 책이 있는지, 그분이 쓴 것이 아니더라도 그 계통으로 깊이 연구한 책이 있으면 알려 달라는 부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렵게 생각하던 신비의 세계를 너무 쉽게 알게 되어 오히려 그 신빙성을 의심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평화로운 내용인 줄도 모르고 두려워 읽기 싫다는 안타까운 오해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 한 쪽도 읽어보지 않고 세간에 흔히 떠도는 미신으로 간주해버리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대하면 대답 대신 웃게 되곤 하였다.
사실 나도 처음에는 좀 황당무계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진리를 알 수 있는 것을, 인간들은 몇 천년 동안 철학이나 과학의 분야에서 그렇게 어려운 연구를 추구해왔나 하는 의아함을 느끼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내가 쉽게 이 책이 말하고자 했던 것을 이해하고 긍정하게 된 것은 내가 겪었던 신비 체험, 그 누구도 확실히 해명해 줄 수 없었던 그것을 그 책이 확실히 설명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영적인 경험이나 흥미가 없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이해하기에는 주저와 저항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기도 하였다.
신앙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예수는, 그것은 인간이 신이 되는 생활에 이르기를 확인하는 일이며, 구원이란 신의 마음에 이르는 사다리인데 3단계를 거쳐서 가게 된다고 하였다.
그 첫단계는 신념으로 그것은 인간이 그것이 진리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둘째는 신앙으로 그것은 인간이 진리를 아는 것이고, 셋째는 완성, 즉 자기가 진리가 되는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서구의 어느 철학자가 기독교는 너무 큰 이상의 등불을 처들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믿음이 가르치는 것을 따라가기 힘들었다고 말했듯이, 나는 그런 예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면서도 그 종교에 귀의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인생의 겸험을 쌓게 되고 예수가 뜻하였던 의도, 역사나 권력에 의해 오탁되지 않았던 그 원초의 맑은 뜻을 알게 되자, 앞에 말한 예수의 말들이 새로운 빛과 의미를 띠며 마음으로 다가왔다.
아마 이것이 진리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신념이라면 나는 아직도 그런 믿음을 가질 그 아무것도 알지 못하여 신념을 가질 수 없었고, 또 그 때문에 암중모색의 인생길을 살아 온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진리란 어렵고 까다롭고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오랫동안 찾고있던 신뢰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발견한 마음이었다. 이 책을 번역하여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동기도 그런 데 있었다.
두 번째 책인 《영혼들의 운명》을 번역하면서, 나는 인간이 진리를 아는 것이 신앙이라면 나는 이미 신앙을 갖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너무도 멀고 높은 곳에 있어 도저히 알아볼 수도 도달할 수도 없을 것 같았던 진리가 너무 쉽게 소리없이 눈 앞으로 펼쳐지는 바람에 당혹한 웃음을 띠게 되면서도 , 이제 지구로 수련을 하러온 우리 인간들의 영혼은 그런 때를 맞이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어쨌든 나는 처음으로 믿음을 갖고 따르고 싶은 이 구명의 결과가 나의 완성에 이르는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 기독교나 불교 또 수많은 다른 종교나 철학, 사상에 이끌리는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이유나 동기에서 그렇게 되듯, 나도 나를 설득시키고, 신뢰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만나게 된 것 같다. 이전 처럼 어두움 속을 헤매며 괴로움을 겪는 일이 없어지면서 내가 누구인가 알게 되고 주위에서 일어나는 그 모든 일들이 어찌하여 그렇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스스로 깨우치게 되었고 갈 길을 알게 된 것은 이 책의 도움 때문이다. 또 죽음이 음울하거나 슬픈 종말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던 이상향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며, 그립고 설레는 귀향길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세상에 나타나는 모든 것은 곧 지나가는 것이다, 만일 지나가는 모든 것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때 진정한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말도 이 책을 통해 더 깊이 느끼게 된 것 같다. 만약 이 책이 진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아름답고 평화롭고 예지로운 것을 믿었던 그 신념을.
2001년 2월 김도희
(영혼들의 운명2 - 마이클 뉴턴 p331~335)
바이두 찾아보시면 18권까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