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주 작가 qna는 이젠 아예 볼 수 없을까? (feat.궁금한 점)
벨소설 입문이 늦어서 그만큼 토주를 읽은 것도 최근인데
가끔 감상글에 드문드문 qna 내용 접하게돼서
열심히 구글링도 해보고 찾아다녔는데 지워지거나 온전하게 나오는 게 없더라고
작가 개인 후일담 수준이면 안봐도 상관없는데
작품 얘기가 있는 것 같아서...
특히 가장 궁금한 부분이 작가가 토주를 치유물 힐링물이라 표현했다라는 얘기인데...
그냥 작품을 통째로 단순하게 표현한건지
아님 서단이가 어느 부분을 통해 어떤 것을 치유했다라고 구체적 풀이가 있었던건지 궁금해.
여러 갈래의 감상 속에서 건진 맥락이 '서단이의 ㅇㄱ 트라우마가 성상납의 강압적 관계로 인해 치유가 됐다' 정도여서
정확한 내용과 워딩을 모르니 혼란스럽기도 하고 막연히 짐작만 할 수가 없어서...
우선 나회원님은 토주극호회원님(feat.무덤작)가 되었지만 소재나 설정 때문에 호불호가 나뉘는 것도 이해는 돼.
아마 이서단의 트라우마가 주요 기준이 될텐데..
이서단 시점의 1인칭으로 서술되는 작품에 주어진 정보로만 봤을 때,
트라우마의 줄기는 ㅇㄱ 이후 최측근에서 그를 보듬어주고 위로해주고 온기를 줘야 할 가족의 2차 가해로 인한 결핍으로 보였어.
끊임없이 자신을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배 혹은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무언가로 비유할만큼
최소한의 소속감조차 느끼지 못한 외로움마저 어느새 무덤덤해질 정도로 익숙해져 있었고.
물론 최초 원인은 ㅇㄱ이고 그것 자체도 트라우마가 아닐 수 없지만,
토주라는 작품 속에서 이서단이 스물여덟해를 되짚어 고독을 곱씹게 한 상처는
가족의 외면과 방치로 인한 '애정결핍'에 방점이 찍혔다고 생각해.
그리고 덧붙이는 사견은 아주 주관적이지만,
앞서 말한 포인트는 '토요일의 주인님' 이라는 제목과도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해.
성적소수자로서 평범한 일상과 평범한 연애 등의 미래를 막연히 꿈꾼 지난 날에서,
스물여덟해가 되어서도 '평범한' 것은 그 어떤 것도 누려볼 수 없었던 현재의 이서단.
정해진 열세번의 '토요일'에만은 온전히 한주원이라는 '주인'에게 여지없이 귀속되는 비상식적인 처지에서라도
평범하지 않은 '소속감', 평범하지 않은 '온기'를 얻을 수 있었기에 그것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
즉, '토요일의 주인님'은 어떤 식으로든 꼬투리 잡히는 sm 플레이 따위에서 파생된 속성이 아니라
이서단에겐 귀환불능지점일 수밖에 없는 필연적 속성이라 생각했어.
(다만 저 비상식적 귀속의 합의는 전부터 이미 먼발치의 잔상조차 지우지 못한 동경대상이었다는 전제가 주효했다고 봐)
아무튼 전체적으로 가시적인 내용만 보더라도
가족과의 단절과 갈등의 골이 깊은 건 자주 나왔으나
스스로 과거 ㅇㄱ 피해에 대한 향후 태세변화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거나 암시하는 내용은 없었잖아.
갈등이 고조되는 후반부에서도 자신과의 관계규정이나 한팀장이 자신을 대하는 심경과 태도에 대한 것이 중요했고.
한팀장이 ㅇㄱ피해사실을 알고 자신의 성상납 관계를 연결지어 회피하고 자책하는 순간에도
이서단이 원하는 바는 피해-가해 관계 규명이나 지난 상처들의 치료가 아니라
천륜에서도 얻지 못했고 얻지 못할 것 같은, 가시밭길에서도 피어나는 앞으로의 '애정' 이었지.
글이 길어졌는데.. 그래서 정확한 작가의 qna 답변이 궁금했어
분명 내가 작품을 통해 본 이야기는 결핍의 보완이라는 점에서 치유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긴하지만
'지난 피해(ㅇㄱ)를 또 다른 가해(성상납)로 치유받은 이야기'는 명백히 아닌데
분산된 감상 속에서의 와전인건지..
qna에서 명시가 된 내용인건지 말이야..
22 글자수 늘리기가 눈에 보여ㅠㅠ